혼자 바느질을 할 때면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친다. 손과 바늘의 움직임이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근육의 기억은 성찰로 이어져 이전의 움직임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거슬러 올라가 닿는 곳은 할머니의 가르침이고, 이는 다시 지금 나의 바느질, 미래를 위해 내가 만들어가는 길로 되돌린다.

내가 한국을 떠나 미국에 왔을 때 손에 든 것은 오직 몇 안 되는 소지품으로 채운 작은 샘소나이트 여행가방뿐이었다. 그리고 그 소지품 중에는 할머니가 기워주신 한국의 전통 양말, 버선도 있었 다. 이 버선은 곧 할머니와 내가 함께 한 시간을 의미한다. 한 사람은 바느질하고 한 사람은 부엌 에서 흐르는 시간을 공유하던 시절의 상징이었다.

내게 바느질을 가르쳐준 사람은 우리 할머니였다. 다섯 살인가 여섯 살이었을 때부터 매일 오후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후 과외를 받았다. 과외가 없는 날에는 할머니가 마루에 펼쳐준 탁자, 자개 장식이 아름다웠던 나전칠기 탁자 앞에 앉아 숙제를 했는데, 할머니는 내 옆에 앉아 함께 공부를 하시거나 버선을 기우곤 하셨다. 그런 할머니를 보면서 나는 종종 숙제보다는 바느질하고 싶다고 생각하곤 했고, 때로는 떼를 쓰기도 했다. “할머니, 할머니가 숙제하고 내가 버선을 꿰매면 안 돼?”

1960년대, 내가 아직 어렸을 때, 한국에서 살던 시절 손으로 직접 실을 잣고 천을 짜는 일은 일상 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손으로 잣고 베틀로 짜낸 천을 일상에 사용해 이불 등의 생활 소품을 만들곤 했다. 할머니는 매년 시장에 가서 손으로 만든 폭이 좁은 기다란 면포 몇 필을 사셨다. 천을 이어 붙인 침구를 만들기 전, 먼저 천을 빨아 말린 후 풀을 먹이고 ‘다듬이’라는 방식 으로 천의 주름을 펼치고 부드럽게 만드셨다. 다듬이는 대리석이나 두꺼운 나무로 만들어진 판 위에 천을 펼쳐놓고, 두 개의 나무 방망이로 두들겨 손질하는 것이다. 나는 종종 할머니에게서 두 개의 방망이를 받아 함께 다듬이질을 하곤 했다. 다듬잇돌을 사이에 두고 할머니와 함께 천을 두들기고 있자면, 마치 말을 주고받으며 대화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불은 마치 잘 다듬어진 아이스링크장 같았다. 가만히 누워 있으면 솜에 씌운 이불보를 바느질하여 완성할 때까지,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제 지금 내 손끝에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바느질의 시작 점에 그 시절 나의 할머니가 내 잠자리를 위해 손수 한땀 한땀 만드셨던 침구가 있음을, 이를 통해 내가 할머니에게서 배웠던 가르침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불을 빨아야 하는 날이면 할머니는 이불이 닳거나 얇아진 부분이 없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시고는, 그 부분의 실을 풀어 뜯어낸 후 깨끗한 새 천을 대서 기우셨다. 그렇게 뜯어낸 낡은 천들은 한곳에 모아 차곡차곡 겹쳐 올린 후 보자기로 싸서 쓸 일이 있을 때까지 보관해 두시곤 했다.

새 버선이 필요한 날이면, 내 손을 잡고 남대문 시장을 찾아가 시장 한쪽에서 손으로 짠 바구니를 담은 좌판에 앉아 있는 한 무리의 여성을 찾아가곤 하셨다. 그들은 직접 실을 잣고 베틀로 면포를 짜서 팔았는데, 놀라울 정도로 질이 좋았다. 할머니는 좌판에 펼쳐져 있는 면포들을 유심히 살펴 보고 버선에 가장 잘 맞는 것을 골라 구입하셨다. 할머니의 버선은 두 겹으로 되어 있었는데, 바깥 겹에는 시장에서 막 사 온 새 천을, 안 겹에는 이불에서 뜯어낸 오래된 천을 사용하셨다. 그리고 바깥 겹을 만들고 남은 천 조각은 따로 모아두셨다. 할머니는 또 버선 위에 한 겹의 천을 추가로 덧대곤 하셨는데, 이는 버선을 좀 더 튼튼하게 만들어 쉽게 닳거나 찢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이야기와 기억은 오늘날 내 작업방식의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이 되었다. 나는 이들이 알려 주는 방향을 따라 천연 재료를 이해하고 존경하는 길을 걸어왔다. 할머니는 모든 것을 아끼고 모아 두셨고, 이는 할머니뿐만 아니라 할머니의 시대를 살아온 모든 사람이 흔히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했다. 할머니는 천 조각을 모아 크기가 큰지, 중간인지, 작은지, 새것인지, 오래된 것인지 구분한 후 정리해 보관하셨다. 우아함과 품위를 갖추고 효율적으로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구축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할머니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었고 동시에 내가 ‘다층적인 디자인 사고’ 라고 부르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할머니가 구축하고 정리하는 일에 대해 가지고 있던 모든 생각과 방식을 패션브랜드 도사(dosa)의 재활용 프로젝트와 예술 설치물에 활용하고 있다. 나는 만드는 것과 동시에 재활용과 후대의 제작방식에 대해 미리 생각한다. 이것이 할머니에게서 내가 이어받은 것이며, 이것이 바로 나이다.

최근에는 우리가 직면한 심각한 환경 문제를 고려해 지속성의 측면에서 수선도 고려한다. 긴 수명에 맞는 가능성을 구축하고 접목하여 우리가 만들어 낼 모든 작품에 적용할 수만 있다면, 궁극적으로 훨씬 적은 양의 자원을 소모하면서 동시에 폐기물의 양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지속성을 염두에 둔 디자인은 수선의 한 형태이며 대표적 사유이자 행위이다. 이는 물리적인 수선과 직접 연관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엄연한 수선의 행위이다. 사람들은 수선을 통해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고, 한 발짝 앞으로 내딛기 위해 시도하면서 동시에 처음부터 지속성을 갖춘 물건을 만들 수도 있다.

할머니에게서 가장 많이 받은 가르침은 아마도 지속성으로 이어지면서 지속성을 의미하는 다층 적인 사고일 것이다.